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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함께한 책

2022년 여름에 읽은 사회책 (인문학/철학/정치학)

by 호기심대마왕 2022. 9. 10.

1. 소유냐 존재냐 _ 에리히 프롬 ⭐⭐⭐⭐⭐

올해 봄 즈음에 프롬 사상의 입문서로 평가되는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귀하게 넘기며 때로는 손뼉까지 쳐가면서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는 거의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먼지처럼 살아가는 하찮은 여대생의 두루뭉실하지만 확고한 삶의 취향이, 세계적 권위를 지닌 학자의 것과 이토록 일치할 수 있는 걸까? 책을 읽는 내내 짜릿한 기분을 놓을 수 없었다. 내 능력의 한계로 어렴풋이 떠다니다 멈춰버린 나의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너무너무 통쾌했다. “맞아, 나도 이 생각이었어! 근데 개쩐다! 맞아 이거였어 이거!!” (무능하면 도움을 받자. 난 무지하니 책의 도움을 받자.) 나와 비슷한 가치관이나 취향을 가진 친구만 만나도 평생같이 만나며 매일 떠들고 싶은데. 이렇게 저명하신 분께서...ㅇㅁㅇ! 저자가 내 삶에 정당성과 확신을 부여해주는 듯한 기분에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여튼 나는 올 봄에 프롬이라는 맘이 잘 통하는데다가 개짱똑똑하기까지 한 친구를 사귄 셈이다. 기쁜 마음으로 그의 다른 저서들을 읽고 싶었다. 그분과 파스타를 먹거나 한강을 산책할 수는 없지만, 책이라는 더 훌륭한 데이트 코스가 있어서 감사했다. 그의 귀한 생각을 단돈 만 원도 안 주고 엿볼 수 있으니 책은 참 혜자인 듯. -난 대부분의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기에 책값이 만원을 넘기기 힘들다.- 뭐 여튼 프롬 행님과 올여름에는 어떤 데이트를 해볼까 고민하다가, 유명한 몇 개의 저서 중 제목만 보고 가장 끌리는 한 권을 골랐다. To Have or To Be. - '소유냐 존재냐'라는 한국어 번역도 훌륭하지만 확실히 원제가 가슴에 폭 와닿는 듯하다. - 파주 헤이리마을에 혼자 여행 갔을 때, 카메라타라는 음악감상실에서 읽기 시작했다. 웅장하고 섬세한 클래식 음악. 가끔 찾아오는 고요한 순간에는 투둑투둑 기분 좋은 빗소리가 유리천장 너머로 들려왔다.

소유는 사용에 따라서 감소하는 반면, 존재는 실천을 통해서 증대한다.

소유적 실존양식에서의 적대감의 요소는 소유라는 특성 자체에 근거한다. "나의 소유는 곧 나의 존재"이기 때문에 소유가 나의 주체의식의 근거가 되는 경우,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필연적으로 많이, 더 많이, 최대한으로 소유...
탐욕은 소유지향의 당연한 결과이다. ... 모든 탐욕은 아무리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정신적 탐욕이 애초에 극복해야 할 내적인 공허, 권태, 고독, 억압 등은 그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으로는 결코 제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쾌락과 말초적 흥분은 절정은 넘어서면 비애의 감정을 남긴다. 흥분은 맛보았지만 그릇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성교 역시 강렬한 흥분과 묶인 절정의 체험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이 지나자마자 환멸이 뒤따른다.

> 우린 이걸 "현타"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존재적 실존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 (hic et nunc)에만 있다.
반면 소유적 실존양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안에 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의 느낌들(또는 그가 느꼈다고 여기는 것들)을 추억함으로써 과거를 느끼려고 애쓴다. 그는 바로 과거 자체이다.

> 자기가 이번에 산 옷과 가방을 자랑하는 사람들, 자기가 먹었던 고급 식당에 대해 한참을 떠드는 사람들, 비슷한 맥락으로 방학에 잠깐 떠났던 유럽 여행의 사진을 애물단지처럼 여기는 사람들. 그 자리에서는 그 멋진 소유물들을 전시하며 기뻐하면 나도 함께 기뻐하는 편이다. 그냥 그렇게 어린 아이처럼 신나하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으니까. 그런데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 속성 자체는.. 썩 매력 없음.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나오는 기독교 얘기. 누군가는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아주 흡족한 설명

따라서 죄(불복종) → 죄의식 → 새로운 복종 (그리고 처벌) → 용서라는 일련의 과정은 불복종 행위가 번번이 한층 더 강화된 복종을 초래하는 한 일종의 악순환이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위축되지 않는 인간은 실로 거의 없다. (중략) 국가와 교회는 힘을 모아서 그 일을 행했다. 국가는 불복종을 죄로 공표하는 이데올로기를 얻기 위해서 종교를 필요로 했고 - 종교는 국가에 의해서 복종의 미덕으로 훈련된 신자들을 필요로 했다.

그 구조는 인간의 중심이 그 자신 안에 있지 않고 그가 복종하는 권위에 있다는 점에서 소유적 실존양식과 부합된다. ... 신뢰하는 하나의 (세속적이거나 종교적인) 지도자 (왕/여왕 또는 신)을 소유하며, 그럼으로써 안전을 소유한다. 단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인물로 있는 전제에서 말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진실일진대, 왜 유럽과 미국은 기독교 정신이 현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솔직히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 사람들이 규율을 잃고 그래서 사회질서도 위태로워지는 것을 막으려면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예수가 자신들을 대신하여 사랑하고 있다는 일종의 망상으로 이 믿음을 소외시킬 수 있다. ...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한, 우리는 그리스 영웅의 본을 따라 계속 살아갈 수 있고, 그럼에도 구원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소외된 '믿음'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행위를 대신하고 있으니까." 이처럼 기독교 신앙은 자기 탐욕을 은폐하는 싸구려 구실이 되어왔고 그렇다는 점은 자명한 일이다.





2. 공정하다는 착각 _ 마이클 샌델 ⭐⭐⭐⭐

했던 말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같은 말을 paraphrasing해서 수도 없이 반복해서 점점 갈수록 지루했다.. 책 두께를 1/2로 축약해도 능력주의에 대한 샌델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가 독자들을 너무나도 세심하게 배려해주신 나머지 한국의 독자 한 명은 책 절반 쯤에 이르러서 지쳐버렸다. '아, 그래. 몇번이고 했잖아요. 이 말. 이해했어요, 뭔말인지. 예시 멈춰! 사례 멈춰!' 결국 뒤의 절반 정도는 거의 안 읽음.ㅋㅋ

그치만 높은 별점을 주는 이유는 이때까지 읽어온 샌델의 책이 늘 그랬듯 내게 고민하고 생각할 만한 주제거리를 충분히 던져줬기 때문에! 진부하지 않은, 나름 참신한 문제 제기여서 흥미로웠다. 능력주의가 진짜로 "능력"주의 인지, 그리고 그게 정말로 "공정"한지.
확실히 고학력군에 능력주의적 태도가 만연한 것 같긴 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얻은건데 뭐, 꼬와? 그럼 니들이 나처럼 열심히 살았어야지~" 이런 생각. 당신이 알바를 뛰며 생활비와 학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하게 입혀주시고 먹여주신 부모님도, 당신의 노력으로 얻었는가. 그렇다 해도 문제인 게, 성과로 100프로가 개인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해버리면, 타고난 재능(물론 절대적인 게 아니고 시대적, 상황적 배경에 따라 소위 재능이라 불리는 게 결정되는 거지만)의 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를 꾸짖고 원망할 수 밖에 없으므로 자존감 박살나버림. 참 어려운 문젠데,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도 다 부모님 덕분이므로 당신들께 잘해야겠다고,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항상 겸허한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3.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_ 멜라니 조이⭐⭐⭐⭐

1) 주변에 비건 친구가 하나 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의 소신을 지키는 그녀와 함께하면서 다름과 함께하는 법에 대해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아예 몰랐을 때는 무례하고 편협한 인간이 될지언정 내 속은 편했다. 아주 조금 알게된 후로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버려 조심조심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 숙제의 주제는 '다름'을 '잘' 존중하고 함께 하는 법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까나. 죽을 때까지 숙제를 마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참 어렵다. 배려랍시고 한 말과 행동이 당사자를 오히려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으려면 최대한 아는 게 많을 수록 확실히 유리한 것 같고 ... 주절주절..

2) 믿음 의 구조



+) 생각해봄직한 글들

고통의 경험은 주관적이므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부정하기는 쉽다. 바꿔 말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는 추정밖에 할 수 없는데, 그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편이 우리한테 유리하다면 그게 사실이라고 아주 쉽게 믿어버린다. 우리의 가정들은 우리의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도록 허용하는 그 신념체계는 자기 보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개인적 양심에 우선한다.

4.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_ 러셀 커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