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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함께한 책

2022년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읽은 에세이

by 호기심대마왕 2022. 9. 10.

1.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_ 김영민 ⭐⭐⭐⭐+

    어느날 알라딘에서 사고 싶었던 책들을 모두 고른 후에 '어디 재미있는 책 더 없을까.' 싶어 서가를 찬찬히 둘러보고 있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제목에 호로록 이끌려 책을 집어들었다. 굉장히 생뚱맞은 문장이지만 철학적으로 꽤 깊은 의미를 품고 있을 것만 같아 기대가 되었다. 그때 스쳐간 저자의 이름, 김영민. 언젠가 본가의 서재에서 동일 저자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찾았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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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과를 지나오면서 몇번이고 폭발 위기를 맞았던 나의 뇌가 어떻게 그 이름 석자를 아직까지 잘 보관하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그 '김영민'이 동명이인이 아니라 동일인임을 확인하자마자 책장을 들쳐보지도 않고 바로 계산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론적으로는 성공!

  이 교수님 참 sexy하시다. 뇌섹남. 그만의 개성넘치는 생각이 정말 재밌다. 그의 글은 씹으면 씹을수록 코끝까지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향신료처럼, 멈추고 곱씹을수록 묵직한 메세지가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역사나 사회 현상에 대해서는 회뜨는 칼처럼 아주 예리하게 비판하고 풍자한다. 무엇이 본질적인 문제인지 낱낱이 해부하여 깔끔하게 플레이팅해 식탁 위에 올려 놓는다. 줄곧 먹어오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특별한 기회라는 걸 잘 알기에 천천히 음미해보며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내가 여러모로 부족한 탓에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글도 더러 있다.) 근데 신기한 점은 베일 것만 같은 그 날카로운 칼 끝이 전혀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세상에 대한 애정까지 갖추면 따뜻한 칼 같은 모순적인 아이템도 쓸 수 있나보다. 부럽다. 

  내가 저자라면 너무나 섹시한 스스로에게 취했을 것 같은데, 그는 겸허하고 겸손하기까지 하다. 아, 당신은 너무나 멋진 중년이시군요. 나는 절대로 구글에 그 이름 석 자를 검색해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혹시나 사진 보고 실망하면 안되니까...  

p23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달리 말하자면 현실적이다. 그래서 실용적이다. 이런거야말로 진짜 지혜가 아닐까. 이 구절을 떠올리기만 하면 내 삶이 한결 아름다워진다. 나를 속박하던 것들에서 자유로워진다. 나는 내가 올해내로 얼굴의 모공을 걱정하고 살기를 바란다.   

p122 자신의 존재가 수단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자신을 제약하는 권위를 납득할 수 없을 때면, 다시말해 자신이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라는 느낌이 들 때면, 누구나 그 난폭한 뺑소니차에 치일 수 있다. 
p147 "우리의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중략) "우리는 조금씩,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님을 깨달았던 것 같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 나는 진지한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 약간의 유머까지 더해지면 최고로 좋아한다. 그의 생각과 말과 글이 딱 그렇다. 

 

 

 

2.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_ 김범석 ⭐⭐⭐⭐⭐

(눈물주의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역할을 하고 싶다. 종양내과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이다. 역설적이게도 유일하게 종양내과에 가기 망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매일같이 고뇌와 번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또 다시 그 길을 걷고 싶어진다. 나는 참 변태같은 구석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책을 집어들고 한 바탕 우는 게 한동안 내 루틴이라면 루틴이었다. (울고 나면 현타와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됨ㅋ 꿀팁) 넘 슬퍼서 한 번에 많이 못 읽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랜 기간동안 읽게 되었다. 진짜 개슬푸다ㅠㅠ 교수님... 눈물 역치 하위 1%인 인간도 종양내과 지원 가능합니까? 환자 앞에서는 꾹 참아 보겠는데요, 스테이션에서는 어떨런지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로 용기라는 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가 아니라 '결국 죽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날들을 버텨내고 살아내겠다'는 의지에 가까운, 살아내는 용기였다. (중략) 결국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든데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답답함에 대한 호소에 가깝다. 때로 누구든 그 속내를 들어주기만 해도 붙잡아주기만 해도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p.74-75)
한편으로 부끄러웠다.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축하해주지 못했던 것이나 그녀의 선택을 두고 지극히 나의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생각했던 것이. 분명한 것은 끝을 알면서도 둘은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고,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랑을 시작한 뒤에 마지막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 사랑할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걸까? (p.140)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상대에게 어느 정도의 비율로 존재하는지 추정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환자의 수를 세고는 내게는 너 하나뿐인데, 라는 고백 같은 말을 던졌다. 갑자기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중략) '600명 중 한 명'과 '단 한 사람', 이것이 그가 느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간극일 것이다. 생사를 다투는 암이라는 절박한 병 앞에서 그는 의지할 곳을 찾아야 했고, 그에게 나는 흰 가운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p.153)
뭔가를 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있어도 하지 않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없다. (중략) 최신 표적항암제가 두 달의 시간을 벌어들일 때는 열광하지만 완화의료로 동일한 두달의 시간을 버는 것에는 놀랍도록 냉담하다. (중략) 과시할 만한 승리는 아니라고 해도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지않는 것도 패배는 아니니까. (p.177)
종양내과 의사는 환자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동시에 희망을 놓치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일은 늘 어렵고 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p.180)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다음 말이 나오려던 것을 붙잡아 삼켰다. '아버지랑 손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텐데 어떻게 해요.'
  (중략) 그러나 그것은 내가 깊이 품지 않아도 될 안쓰러움이다. 내게는 말 한마디로 끝날, 강 건너 남의 일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상기시켜주지 않더라도 가족들이 이미 더 잘 알고 있다. 그런 일은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혹은 내가 위로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남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내몫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다. 그 같은 슬픔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이 그들의 잣대로 규정짓고 재단하려 할 때 슬픔을 견뎌야 하는 사람에게 더 큰 슬픔이 되곤 한다.
  (중략) 그저 자신들의 기준으로 내 인생을 재단하고 내 현실을 동정하고 가버렸다. 그들에 의해서 나는 불쌍한 사람이 된 채 그것으로 끝이났다. 나는 그런 가볍고 얄팍한 동정이 싫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내 인생을, 내 이야기를 멋대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러니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것은 괜한 오지랖이다. 결국 내가 가진 잣대로 상대방의 슬픔의 크기를 재려는 것 뿐이다. 예비 신부에게는 결혼 축하한다는 인사가 필요한 말의 전부일 것이다. 
  (중략) 그 슬픔의 빈 공간은 나의 안타까움과 걱정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채워나가야 하는 각자의 몫이다. 

(p.188-193, 3월의 신부를 위한 인사) 
 어쩌면 그렇게 불완전함을 메우려는 노력 자체가 윤리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나는 윤리가, 의료윤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 산다. 내가 불완전한 사람임은 충분히 자각하고 있으며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며 배우고 나아가고 있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유지하려고 한다. 그것이 어쩌다 '윤리'라는 말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으며. (p. 202)
누군가를 돌볼 때에는 어느정도는 이기적이어야 이타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기심과 이타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중략) 그에 앞서서 나 자신을 보살펴야 하는 스스로의 보호자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먼저 돌볼 사람은 나뿐이다.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을 때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과 여력이 생긴다. (p.211)

 

3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_ 김선영 ⭐⭐⭐⭐

  종양내과 꽂혀서 또다른 종양내과 선생님 책! 위에 책보다는 조금더 문학적인 문체를 구사하시는 분이다. 친구가 책 표지 예뻐서 샀는데 좋았다고 추천해준 책이기도 하다. 부모님의 투병일기를 인용하여 과거(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투병생활)와 현재(종양내과 의사로 살아가는 작가의 삶)를 오가는 내용 전개 방식이 신선하고 좋았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된 것 

- 죽음이 임박한 풍경은 TV드라마에서 보듯 엄숙하고 고요하지 않다. 열나고 숨못쉬고 그렁대고, 아프고 무서워서 소리지르고, 똥오줌 냄새가 진동하고, 가족들은 지쳐있다. 

- (특히 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두렵고 불안하고, 그래서 추해진다. 

 

  임종환자를 돌보느라 가장 고생하는 이는 보호자와 간호사이지만, 의사도 때로는 이런 분노와 슬픔을 감당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환자의 질병을 조절하여 도와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무척 견디기 어렵다. 또한 의사의 역할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우선은 환자와 보호자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또는 스스로의 무력감을 순간적으로라도 굴복시키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보겠노라고 기약없는 약속을 한다. 그러고는 환자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약물치료, 시술을 반복하고, 결국은 그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겼음을 후회한다. (p.136)

> 내가 망설이는 유일한 이유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준 대목. 당연히 패배감이나 무력감보다는... 환자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유능감을 느끼는 삶이 좋긴 하니까.

 절망 끝의 분노는 갈 곳이 없어 나를 향한다.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정리될 것이다. (중략)  '죽음' 아니면 '완전한 삶'만을 원하는 그에게 남은 수 주를 어떻게 채우라고 할 것인가. 아직도 나는 고민하고 있고, 뭐라고 해야 할지 고르고 있고,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가끔은 나 역시 이 답답한 상황에서 도망치고만 싶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의 삶을 끝까지 존중하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해줄 것은 있는 것이다. 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는 한. (p.139)

> 삶의 끝자락과 함께 하다보면 매 순간이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가득차겠지만, 그 덕에 항상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는 교수님들의 모습이 참 가슴 아프도록 아름답다. 소똥 그득한 밭에서 그걸 거름 삼아 홀로 피어난 들꽃 같다. 들꽃은 자신이 잘 가꿔진 정원의 장미보다 보잘 것 없다고 느끼겠지. 난 홀로 고개 숙인채 바람에 나부끼는 수수한 들꽃이 그렇게 예뻐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