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 옛말이 있다.
최근들어 야박하고 옹졸하게 구는 스스로를 자주 발견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난 항상 돈 문제와 함께였다.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생계를 위한 돈벌이에 당장 뛰어들어야 할 만큼
생활이 쪼들리고 궁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내 기본 생활 수준에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맞는 이정도 규모의 돈을 가진 이상
남에게 막 내어줄 여유는 없어졌다.
베풀기 위해서 내 규모를 줄일 수 - 사치 없이 검소하게 지낼 수 - 도 있겠지만
지갑이 뚱뚱해지는 게 더 간편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돈돈돈. 언젠가는 - 적당히 빠른 시기에 -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었다.
몇몇 재테크 유튜버의 추천 도서로 반복적으로 회자되길래 냉큼 서점에 가 사들인 책
원제는 DER WEG ZUR FINANZIELLEN FREIHEIT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
일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잘 읽었다.
독자는 책 전반에 걸쳐 크게
1) 돈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긍정적으로 확립시켜 주려 했고
2)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서 돈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본인의 원칙을 알려줬다.
자기개발서 특유의 지시하는 듯한 권위적 말투나 무한 긍정 주문은 나로서는 조금 읽기 거북했지만, 뭐 이해한다.
상냥하고 겸허하고 뜨뜨미지근한 태도로 "돈 많이 벌 수 있어요~" 라고 했다면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을테니깐
1 이제는 찾는 법을 배워라
p32 돈은 언제나 우리가 부여하는 만큼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우리가 돈 문제로 곤란을 겪는 동안 돈은 필요 이상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린다.
p36 돈 문제로 당신의 자신감이 훼손당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p39 단지 돈때문에 스스로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해야하는 상황을 만들지 마라. 경제적 자유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p42 꿈과 목표와 가치와 전략을 한데 묶지 못했기 때문이다.
- 내 꿈은 "여유롭게 늙어가기", 즉 몸의 건강, 정신의 건강, 풍족한 재물 이 세가지를 모두 갖추는 것이다.
- 내가 한 때 동경했던 가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 "희생 정신, 이타심" 이런 것이었다. (종양내과교수님들을 동경했었다.)
- 하지만 이번 의료개혁사태로 내가 꿈꾸던 "사명감" 같은 건 이 시대 이 나라에선 그저 허구일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 설령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셰퍼씨의 주장대로라면 나의 꿈을 위해서라도 그 가치는 버리는게 마땅하다.
- 셰퍼씨는 가치를 꿈과 목표에 맞게 조정하라고 조언했다. <여유롭고 곱게 늙고 싶다>는 꿈을 이루는 데 그런 가치는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된다. 내 가족의 안위, 소소한 행복 이런 것을 우선 가치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2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만 부자가 된다.
p56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은 그 사람에게 권한을 넘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모든 책임을 기꺼이 나 자신에게 돌린다. 내 삶에 대한 권한을 나 스스로 행사하고 싶기 때문이다.
뻑하면 핑계대고 자기합리화하며 숨기 바쁜 나의 마음에 송곳처럼 날카롭게 들어온 구절이당. 흠냐냐
주체적인 삶, 삶의 주권을 쥐는 것을 제일로 여기지만, 저 무의식 깊은 곳에는 남에게 책임소지를 슬쩍 돌리려는 못된 버릇이 존재한다. 늘 의식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만큼 고질적인 내 나쁜 버릇. 더 경각심을 갖고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58 당신은 미래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 미래를 만들어 갈수 있다는 자신감은 당신의 과거에서 나온다
- 10년 전 내 과거가 어땠는지, 그당시에 나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는지를 물어본다. 10년 전이면 16살 중3,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막 마음 먹은 농땡이였다. 의대를 갈 거라고 생각도 해본 적 없고, 어느날 의사에 꽂혀서 돌연 마음 먹고 공부를 시작했다. 의대 외에는 선택지 자체를 만들지 않았고 스스로를 거세게 몰아붙였었다. 눈 떠보니 지금은 의사가 되어있다.
- 10년 후의 미래는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이룰 수 있는 시간임을 체감한다. 난 일을 최소한으로 하고 밥해먹고 운동하고 낮잠자는 '띵가띵가 라이프'를 가능한 빨리 이뤄낼 것이다. 내가 원하는 미래가 꿈만 같을수록, 그곳에 도달하기 전까지 나를 극한으로 몰아세워야 할텐데, 사실 이 부분은 자신이 없다. 우헤헤..
- 보도셰퍼씨가 말하는 "부자로 가는 길"과 내가 지향해오던 "안분지족의 삶"은 너무나도 양 극단에 서있다. 손 잡을 수 없다. 균형을 맞추는 것보다 하나를 과감히 버리는 게 백만배 쉽다. 내 옆엔 지금 반야심경 책이 있다. 해탈도 하고싶고 부자도 되고 싶다. 휴 혼란스럽다,,
p61 부나 행복은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가 커지는 과정에서 생긴다. ... 안전지대에서 나와라. ... 문제를 피해서는 부와 행복을 얻을 수 없다. 남보다 돈을 더 많이 갖고 싶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문제와 싸워야한다.
- "어른 되는 건 너무 어려워" 이 말을 지난 몇 달간 몇 번을 말했는지 셀 수조차 없다. 부동산 계약 잘 따져보고 은행 대출 받고 세금 내고. 이 모든 과정이 사회초년생도 아닌 사회신생아 수준인 내게는 넘 벅찼다. 알아보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머리가 지끈지끈해서 그냥 아무 책임 없는 학생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 그치만 스스로 챙겨내야 할 몫이 느는 게 그저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누려야 마땅한 온갖것을 다 포기하고 싶어하는 건? 너무하다.ㅋㅋ 그러려고 했던 나를 이제는 좀 나무라고 싶다. 해보기도 전에 도망가려고 했던 스스로를 이자리에서 꾸짖는다. 어른이 되어가며 재산을 증식하는 과정에서 내가 관리해야할 몫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 아빠가 얼마전에 "재물이 늘어나는 것은 꼭 좋기만 한 건 아니란다.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늘 명심하고 신중하여라."고 했던 게 문득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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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 포스팅을 못다한 채로 덮어두었었는데,
뒷 챕터는 더 정리하지 않고 마무리하겠다.
지금은 책을 다 읽은지 몇 주가 지난 시점인데,
이 책을 다시는 진지한 자세로 펼쳐보고 싶지 않다.
예스24나 교보문고 홈페이지를 보니 9.7/10.0 정도의 대단한 평점을 자랑하던데,
나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4.0 정도를 주고 싶다
이 책을 읽고나서 부를 향한 탐욕이 나라는 인간을 완전히 잡아먹었다.
내리막길을 구르는 쇠공마냥 멈출 수 없었고
눈쌓인 언덕배기를 굴러내려오는 눈공마냥 점점 불어났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누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테다.
이 책 첫장을 펼치기 전부터 아마도
내 안에 부에 대한 열망의 씨앗이 존재했을 거고
이 책은 그저 그런 나를 살짝 건들였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아무리 감안해도 조금은 위험한 책이다.
지금에서야 보이는데, 저자의 여러 발언과 태도가
기독교나 사이비종교의 그것과 굉장히 닮아있다.
돈이라는 신을 섬기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고
교인을 모으기 위해 설교하는 교주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게 이 책이 될 것 같다.
돈, 물질만능주의는 아무래도 종교적 색채를 띄기 쉬운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믿음의 구조와 종교에 대한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서 건너 뛰고
대략적인 유사점에 대해 정리해보자면
| 돈을 좇는 종교 ex 보도섀퍼의 돈 | 유일신 종교 ex기독교 | |
| 심리적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 ** | 돈에 관한 것 "돈이 없다" "돈이 부족하다" |
삶과 인생에 관한 것 "이번 생은 희망적이지 않다." "이번 생에 지은 죄가 많다." "삶의 존재 이유가 없다." "외롭다(소속감이 없다.)" |
| 그 결핍이 완벽히 충족된 허황된* 미래를 제시한다. | 일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생계비가 들어오는 경제적 자유의 상태! | 다음 생에 갈 천국! + 죄책감을 씻는 것, 삶의 존재이유와 소속감 등은 현생(교회 또는 폐쇄적인 믿음공동체)에서 채워줌 |
| 그곳에 이르는 조건을 알려주고 자기 말대로 착실히 이행하면 누구든지 무조건 그곳에 갈 수 있다고 확언한다. |
몇 프로는 꼭 분산해서 어디에 투자해라 등등 |
성경말씀에 대한 철저한 믿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저의 죄로 인해 그 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 제 마음 속에 오셔서 제가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출처: 위키하우) |
| 그러지 못한다면 자기가 알려준 법을 따르지 않은 이의 게으름이나 무능 탓이다. | ||
| 추종자/열광하는자는 많은데 비해 실제로 간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 무조건 경제적 자유에 이를 수 있다는 베스트셀러를 수많은 사람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 ? | 하나님을 실제로 뵙거나 천국에 간 사람 ... ? |
*책에서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는 천국 등 내세에 대한 것에 비하면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일반적으로 실제로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실제 주변에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물론 모태신앙을 포함해 주변이 철저하게 공유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환경에 있다면 필요조건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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